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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으로 국내 최초로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성당이다. 이 곳은 성당의 종교적, 건축적 가치와 더불어 우리 현대사의 위기 때마다 지성과 양심의 보루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도 높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곳은 조선시대 명례방에 속해 있었다. 명례방은 천주교 도입 이후 신자들의 종교계가 형성된 곳일 뿐만 아니라 이승훈이 세례를 한 곳이다. 또한 1830년(순조 30) 이후 선교사의 비밀선교의 중심지였으며, 1845년(헌종 11) 귀국한 김대건 신부가 활동하던 곳이다.


한국 최초의 본당이자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성당이다. 이곳은 종교적, 건축적 가치뿐만 아니라 우리 현대사의 고비마다 지성과 양심의 보루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역사적 맥락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 때문에 천주교 조선교구는 1883년(고종 20) 명동성당 일부를 매입하였다. 매입 당시 판사 출신 윤정현 씨의 집이 있었다. 윤정현은 추사 김정희가 부탁받은 지 30년 만에 쓴 유명한 서예 작품 '침례교회'의 주인공이다. 그의 집은 외딴 공간에 60칸이 넘는 큰 집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교회 건물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1887년(고종 24)에 본격적으로 성당 건립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조선 정부는 천주교회에 공사 중단과 토지권 포기를 요구했다. 이곳은 중구 저동에 있던 조선 황제의 영정을 기리는 영희전의 주류라는 풍수지리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도성 내부는 물론 궁궐을 보는 것이 편치 않을 당시 명례방 언덕에 궁궐보다 높은 건물을 지었다는 것은 무례한 짓이었을 것이다. 당시 새로 지은 성당 건물들은 모두 한결같이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서양 건축물의 종교적 지위와 위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빛 지나가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후 프랑스 공사관의 노력으로 1890년 소유권이 가톨릭교회로 넘어가면서 상황은 종료되었고, 공사가 재개되어 그해 주교가 처음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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